'2009/04'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4.30 사신 치바 (7)
  2. 2009.04.22 연애소설 읽는 노인 (11)
  3. 2009.04.17 악어사냥꾼 금홍 (2)
  4. 2009.04.17 고양이 금홍의 하루

사신 치바

2009. 4. 30. 09:00

그가 일할 때면 언제나 비가 내린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라..." 글쎄, 맑게 개인 날을 본적이 없는 그에게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말이다.

그의 직업은 사신이다.
이번에 그에게 배정된 사람은 20대 초반의 전자회사 콜센터의 불만처리부 여직원이다.
일주일간 그녀를 직접 만나보고 조사해서 죽음을 실행하기에 적합한가 어떤가를 판단하여 보고 하면 된다. 판단은 "가(可)" 혹은 "보류", "가(可)"로 결정되면 일주일의 다음날 즉 여드레째 되는날 죽음이 실행된다.

그녀의 생김새는 평범하다 못해 거리에서 보면 풍경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약간 큰 키에 적당히 마른 몸매는 보기 나쁘지 않지만 구부정한 걸음걸이 때문에 어쩐지 음울해 보인다.
표정 또한 곧 죽을 사람처럼 한없이 어둡다.
사실 "가"가 되면 죽겠지만.

지금의 그는 대상자에 접근하기 쉽게끔 20대 초반의 남자로 세팅됐다.
사신은 케이스 별로 그에 맞는 외모와 연령이 된다.
하지만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관리상의 편의 때문일까?)
치바가 그의 이름이다.
그렇다. 도쿄 옆 치바현(縣)의 그 "치바"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에게 접근한다.
매사 음울할 것 같은 그녀는 역시나 삶의 목적도, 남자친구도 없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고 한다.
게다가 고객센터로 전화해 끈질기게 아무말이나 해봐라, 노래 해봐라, 만나보자는 스토커까지 있는 한마디로 자기 인생은 실패자이자 살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영락없이 '가'다.
이번엔 일이 일찍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냥 미리 "가"로 보고하고 나머지 시간을 음반매장에서 보내다 갈까? 

사신은 모두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을 좋아한다.
어떤 사신들은 일찌감치 "가"로 보고하고 나머지 기간동안 음반매장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일종의 직업윤리(랄까...)가 있어 그냥 일주일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시 그녀, 후지키 가즈에를 만나게 된건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결정을 내려 감사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 골목에서 후지키 가즈에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상과 달리 그녀는 다른 길로 간다.
그리고는 한층 더 암울한 얼굴로 전에 말했던 스토커를 만난다!
그런데 스토커의 얼굴이 치바에게 어쩐지 낯이 익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과연, 후지키 가즈에는 여드레째 되는날 생을 마감하게 되는걸까...

*

이 책은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맨스에 하드보일드, 추리, 로드무비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 중 후지키 가즈에가 나오는 첫번째 단편은 마지막 단편과도 이어지고
70대의 노파가 주인공인 마지막 단편은 나머지 단편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죽음에 대한 사신의 성찰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화자인 사신 치바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때문에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죽음을 앞둔 인간과 함께하는 시간과 마지막에 그가 사신임을 알아채는 노파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70대 노파와의 대화다.

   "그보다 지금 당신의 말투를 보니, 역시 이번에는 내가 죽을 차례같군요."
   "마음이 상했나요?"
   "아니오."
   노파는 허세를 부리지도, 자포자기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듯
   "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게 뭐죠?"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
   "당연하죠."
   "당신한테는 당연하겠지만, 나는 이걸 실감하는 데만 칠십 년이나 걸렸다구요."
    ....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

이사카 코타로를 처음 만난건 <골든 슬럼버>를 통해서였고 이번이 두번째 작품이다.
<사신 치바>는 <골든 슬럼버>에 비하면 조금은 어깨에서 힘을 뺀 작품같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터치로 풀어내는 감각이 좋다.
가볍게 읽기에 좋은 그렇다고 진지함을 놓치지 않은 품격있는 오락소설이다.

***

인상 깊었던 구절,
 "외모는?" "시원찮아." 남자는 답을 하더니 제풀에 웃음을 터뜨렸다. 넉넉하고 따뜻한 웃음 소리였다. "괜찮아. 아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니까. 재능이 발휘되기만 한다면 껍질이 벗겨진 듯 외모에서도 매력이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런거야."

****

2008년 <스위트 레인 - 사신의 정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돼 주인공은 금성무가 맡았다고 한다.
국내에선 개봉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 번 봐야겠다.


Posted by 솔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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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myang* 2009.04.30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보니까 정말 영화로도 어울리겠구나 싶고 금성무라니 더더욱~보고싶어지요 힛
    재미있으면서 깊숙한 메세지가 전달될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기대되는 내용이네요
    때론 삶의 무게로 왜곡될지도 모를 진실을 가상속에서 전해읽을수 있다니
    오히려 편견없이 받아들일수도 있겠어 ..라는 느낌도 들구요
    글로만 접햇는데 막 읽은척? ㅋㅋ~
    느낌이 샤악~전달되는데요~근데 왜 영화가 더 보고싶어지죠? ㅋㅋ

  2. 머니야 머니야 2009.04.30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컹...여긴 엄마블로그모임인가봐요...ㅠㅠ
    솔이아빠님으로 부터.. 다른방 활동하신단 말씀 들었어요^^
    앞으로 자주 널러오겠습니당!

    • 솔이엄마 2009.05.07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마들 방이 되버렸네요? ㅎㅎㅎㅎ
      솔이네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려니 성격이 달라, 이곳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3. 명이~♬ 2009.05.11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은 책인데요? 저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ㅎㅎ
    그러고보니 전 아빠블로그, 엄마블로그에 주로 서식한다능..ㅋ

    • 솔이엄마 2009.05.13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꽤 재밌는 책이에요. 애 키우면서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쉬운? 책이고요.ㅎㅎㅎㅎㅎ
      그런데 명이님은 왜 엄마 아빠블로그에 서식하실까나~~ㅋ
      조만간 엄마블로거가 되는건 아닐까하는 무의식의 발로?

  4. Kay~ 2009.05.20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여기가 솔이아빠의 짝궁 블로그인가요?
    솔이엄마님 책 좋아하세요!
    솔이아빠네 블로그 배너에 솔이엄마의 서재? 이렇게 되어 있던데.. ㅎㅎ
    그것도 좋아보이더라는..
    이런 제가 첫 댓글에 이렇게 횡설 수설.. 하네요!. ㅋㅋ
    자주는 못 오고요 가끔 놀러올께요..
    근데 위 사진 안나오넨요!

연애소설 읽는 노인

2009. 4. 22. 17:20

온통 세계가 은빛으로 물들도록 비가 내리고 있다. 기후가 사시사철 따뜻한 이곳은 아마존강 유역의 안쪽 깊숙이 위치한 이딜리오마을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우린 그 불길한 살쾡이의 발자국을 따라 좀 더 밀림의 안쪽으로 들어갈 것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그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제 육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아직 강인한 눈매엔 그가 한때 같이 생활했다던 원주민 수아르족의 기상이 남아 있고 여전히 억세고 윤기나는 팔뚝은 아직은 그가 자기 손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남성임을 증명하고 있어 어른들은 이번 추격단의 우두머리로 손색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밤마다 자기 전에 이상한 책을 읽을 땐 입을 오물거리며 이를 빼 놓는 것을. 동네 어른들 중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볼리바르노인처럼 사냥을 하거나 이번처럼 중차대한 임무를 맡아 모험을 떠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밀림에서 살았고 사냥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용맹했다는 건 모두 지난 일이다. 이를 빼놓는다니. 더 이상 이가 자기 신체의 일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고기도 뜯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 소린 그가 이젠 이 세상보다 저 세상과 더 친하단 소리 아닌가. 한 발을 저쪽 세계에 담근 자와 이번 일을 같이 한다는 자체가 못마땅하다. 이런 생각을 마을 족장 어른께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경솔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까봐 어머니께만 넌지시 말했다.

“에난디오, 호세노인의 이가 없는 건 젊어서 술마시고 내기 하다가 그렇게 된거야. 친구들이 그의 남성다움을 증명하는데 마취하지 않고 이를 몽땅 뽑으면 여태 벌었던 재산을 다 주기로 했다나 뭐라나. 바보 같은 짓이지만 취한 김에 호세노인도 그러자고 했댄다.”

그러면 어머니 더더군다나 그런 바보 짓을 했던 사람을 따라 갈 수는 없어요. 이건 목숨을 거는 일이고 나는 살쾡이를 죽이는 이런 바보 같은 원정대에 참가하고 싶지 않아요.

“에난디오. 이건 마을 어른들의 뜻이다. 마을 제일의 사냥꾼인 네가 가야만 우리도 안심할 수 있어. 이 엄마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단다.”

저는 먹기 위해서가 아닌 이유로 동물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옆 집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가 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그 살쾡이는 새끼를 잃었어요. 나라도 내 자식을 잃고 나면 인간을 미워할 거에요.

내 심장을 주신 나의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그리곤 내 머리를 감싸 안으시더니 나를 위해 성안토니오의 기도를 외우셨다. 용기와 자비를 비는 사냥꾼의 기도이다. 그리곤 조용히 불을 끄고 나가셨다. 어젯밤의 일이다.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마을 공터에 갔다. 그곳에서 다른 사냥꾼들을 만나 밀림 속으로 이동할 것이다. 큰 비가 그치고 난 후엔 일시에 온갖 밀림의 향기가 덮쳐온다. 각종 열대과일과 이름 모를 풀향기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야자수 그늘에 들어가면 이런 향기 때문에 시원하다. 냄새에도 색깔이 있다면 밀림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노란머리앵무새 같을 것이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향기가 난다.  

초록안개 속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마을 족장의 뒤뚱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밀림으로 들어가는데 어디서 주워온 건지 모르는 장화를 신고 오다니. 아마 얼마 가지 못하고 버릴 것이다. 곧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도 도착했다. 마치 점성술사의 모습처럼 보인다. 몇 백년을 홀로 살아온 사람처럼 고독해 보인다. 잠시 족장의 말이 있고 볼리바르 노인이 사냥할 때의 주의사항에 대해 몇 마디 했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뿔고동 소리가 울려퍼진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개념적이고 딱딱할줄 알았는데 이 작은 책이 이리도 서정적일 줄이야...

나에게 좋은 책이란 아니 좋은 예술작품이란 그걸 매개로 감정의 울림이 생겨 무언가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림이, 음악이, 글이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말이다.
이 책 <연애소설 읽는 노인>도 그랬다.

이 책을 읽고나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끼와 남편을 잃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음을 불사한 복수를 감행하는 살쾡이가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문명을 앞세워 밀림을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복하기만 즐기는 인간의 탐욕에 분노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소설속 아마존 강가로 가 야자수 나뭇잎 얼기설기 엮어 사는 그 안토니오 노인처럼
나도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싶은 동경심 때문일까.

여기 아마존의 한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이 아마존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지켜보다 자신의 부족에 받아들이는 수아르족의 방식과
항상 정부를 욕하는 치과의사와의 담담한 우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날 암살쾡이가 백인 사냥꾼을 할퀴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부의 대리자 뚱보 읍장은 미개한 인디오들을 의심한다.
미개한 그들이 물건을 빼앗고자 백인을 죽였다는 읍장의 주장에 안토니오 노인은
그것이 어린새끼를 죽이고 숫살쾡이를 상처입힌 어리석은 백인 사냥꾼에게 복수하기 위한
암살쾡이의 짓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님을 경고한다.

이제 아마존의 한 부락은 위험하다.

살쾡이의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혹은 인간으로부터 훼손되어버린 살쾡이의 삶과 죽음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안토니오 노인이 나선다.

줄거리도 아름답지만 마치 그곳에 있는듯, 안토니오 노인의 건강했던 지난날과
밤이면 홀로 호롱빛에 의지해 연애소설을 읽는 적적하지만 자족적인 지금의 삶이 생생하다.
그 삶이 깨어지지 않기를...

지배계급의 이익때문에 문명을 전달한다는 구실로 토착민들의 삶을 짓밟는 정부와
양식을 위해서가 아닌 오락을 위한 살생을 하는 인간의 사냥이 거기서 멈추기를,
그래서 더이상 아름다운 것들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솔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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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YN 2009.04.28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2. 솔이아빠 2009.04.28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만드는건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ㅋㅋ

  3. 해피아름드리 2009.04.29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이엄마님~!!
    반가워요^^
    솔이엄마라 하심은 솔이아빠랑 부부인게죠??
    아닌가?? ㅋㅋㅋ..
    종종 뵈요~~요즘은 바빠 마실 잘 못 다녀요 ㅎㅎ..
    항상 행복하시구용~~

  4. 검도쉐프 2009.04.29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이어머님, 반갑습니다.
    저희처럼 부부블로거이신가 봅니다. ^_^ ㅎㅎㅎ

    • 솔이엄마 2009.04.30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반갑습니다~
      부부가 다 블로그 하니 매일 밤 블로그 이웃님들 얘기에 시간 가는줄 몰라요.ㅎㅎㅎㅎ
      솔이는 혼자 놀게 내비두고 ㅎㅎㅎㅎ
      자주 뵐게요~

  5. 거나양 2009.05.02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이엄마 블로그네요.
    좋은 리뷰 덕에 이 책 샀는데,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번 연휴에 아기는 가족들에게 맡기고 꼭 완독해야겠어요.

    • 솔이엄마 2009.05.07 0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이 책 사셨어요? 생각날때면 가끔 읽는 책인데 분량도 많지 않고 내용도 무겁지만은 않아 읽기 좋으실 거에요. 아기 키우면서 책 읽기 만만치 않죠? 엉엉... 우린 언제 여유롭고 한가하게 책 읽고 화초 가꾸고 문화생활도 즐기는 사람이 될까요? ㅎㅎㅎㅎ 종종 들러주세요~

악어사냥꾼 금홍

2009. 4. 17. 08:07

공기가 축축하다.
여긴 어디지?

수분 때문인지 모든게 약간은 진해보이고 거리감이 없다.
마치 형광등 조명 아래의 풍경처럼 금속성의 느낌이 난다...
이곳은 목욕탕? 아니지... 그보다는 삼류 온천 같은 곳이다.

어디선가 색이 점점 빠져가는 악어가 느릿느릿 기어온다.
그 목욕탕 같은 이상한 장소는 악어의 마지막 무덤 같은 곳인가보다.
자세히 보니 왼쪽 편에 색이 다 빠져 흰 석고 같이 변해버린 악어가 세마리 물속에 담겨 있다.
지금 기어오는 악어는 배에서 꼬리쪽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피가 빠지면서 머리에서부터 꼬리쪽으로 점점 하얗게 변해 간다.
저쪽에 이미 흰색으로 굳어버린 악어들이 가끔 진저리치듯 꿈틀댄다.

그래도 악언데 물리면 다리 한짝은 떨어져나가겠지 싶어 나는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인채 계속 철조망 뒤에 숨어있다.

그렇다. 내가 있는 곳은 그 목욕탕처럼 생긴 곳에서 반층 정도 높은 곳의 바위 뒤다.
악어가 있는 곳과는 철조망으로 분리되어 있고 인공물처럼 생긴 바위와 나무에 가려 저쪽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내 뒤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산책로가 있는 것 같다. 친근한 장소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안전한가보다. 멀리서 여고생 또래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아, 여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뒷산이다. 교정이 워낙 넓어 악어 한두마리 산다해도 눈치채지 못할만한 곳이다. 가끔 뒷산을 산책하다 길을 잘못 들면 숨어 있던 악어를 만나기도 한다. 지렁이만큼 많은 수이다. 재수 없이 밟기라도 하면 다리 하나 잃는 일은 예사로 있다.

학교에선 조회시간에 제발이지 좀 뒷산엔 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나이 또래 애들이 어디 선생 말을 듣나. 담력시험으로 혹은 어쩌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주 그쪽으로 가게 된다. 해서 우리학교는 한해에 팔 다리 잃는 애들 한두명은 보통으로 있었다.

아무리 살충제를 뿌리고 조심을 한다해도 악어의 수는 줄지 않았다. 학교 당국과 동네주민들은 더이상의 인명피해를 줄이고자 악어사육장을 만들기로 시에 건의했고 고등학교에 악어사육장을 만드는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버티던 학교측도 졸업생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압력에 굴복해 3년만에 허가를 내주었다.

다행히 우리 학교엔 수영장이 있어 거기를 개조해 악어풀을 만들었다. 처음엔 풀에 수감되길 거부하는 악어 때문에 체육시간마다 4인1조로 악어한마리씩 잡아다 그 풀에 넣는걸로 체육점수를 대신하기도 했다.

며칠전부터 여기서 금홍이 일한다. 우연한 기회에 금홍이 악어몰이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걸 알게 됐고 그 후로 몇가지 행정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형편 되는대로 처리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서 그 일을 맡게 된거다. 군에선 군용개가 군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는데 아직 금홍이는 준공무원 신분이다. 월급과 출퇴근 시간 등 여러가지 차별을 받긴 하지만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혼쾌히 승락했다고 한다.

Posted by 솔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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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myang* 2009.04.25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합니다~ 금홍의 활약상.. 오~솔이엄마 건재하외다~

고양이 금홍의 하루

2009. 4. 17. 07:42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맑다.
어제 이맘땐 창밖을 보니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는데.

며칠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금홍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비가 와 은근히 걱정된 나는 운동 하러도 못가고 서둘러 집에 왔는데...
비 오는 새로 금홍이 목소리 들릴까봐 음악도 듣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지...
혹시 차에 치인건 아닐까, 이 비에 감기라도 걸려 아파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면...
그날은 내내 돌아오지 않는 금홍이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다음날, 퇴근하는데 금홍이 뻔뻔하게 문앞에서 야옹- 거리며 앉아 있다.
마치 내가 늦게 들어와 여지껏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이 운다.
'아니 저년이!! 일단 들어가서 보자!!!'싶은 나는 목덜밀 잡아 들고 집에 들어가 패대기치듯 내려놨다.
일명 '나 지금 화났어' 버전이다.

목소리 낮게 깔고 "너 어제 어디 갔었어! 왜 집엔 안 들어 왔어, 밖에서 뭐 먹었어,,,,"하는데
요게 손가락질 하면 손에다 부비부비, 화나서 왔다갔다 하면 발을 쫓아 다니며 부비부비,
의자에 앉으면 무릎에 뛰어올라와 부비부비, 컴터를 켜면 키보드 위에서 부비거리고 있다.
반갑다는거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하마터면 못보는줄 알았다는 시늉이다.

다른 고양이들처럼 영리해서 혼나지 않으려 뼁끼쓰는거면 그게 또 얄미울텐데 금홍이는 진심 100%반갑다는 표시를 하는거다.

이건 살면서 고양이 20마리 이상은 키워본 나니까 장담한다. 이렇게 순수하게 완전 멍청한 고양이는 처음 봤다. 전에 엄마가 기르던 덕완이란 이름의 고양이와 쌍벽을 이룬다. (알고보니 덕완이는 평화주의묘였던 거지만)

첨엔 덕완이가 밖에만 나가면 맞고 들어오는줄 알았다. 덩치도 수박같은게 지보다 작은 고양이들에게 쫓겨 맞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자주 귀나 코가 찟어져서 들어왔었는데...

하루는 같이 사는 고양이, 꼰진이가 수세에 몰려있는걸 발견한 덕완이가 그 수박같은 덩치에 털을 있는대로 부풀려선 다른 고양이를 일거에 제압해 버리는거다. 그 광경을 본 우리는 그 후로 덕완이를 더이상 멍청하다고 놀리지 않았다.

걔는 그랬다. 일단 덩치값도 하고 외모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서고양이 같은 은근한 분위기가 있어 뭐랄까, 딱히 멍청하다는 이미지 보다는 초연하달까... 속세완 무관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금홍이는...

밖에서 아마 왕따를 당하는 거 같다. 에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금홍에게는 고양이 냄새가 나질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보면 자기 냄새는 물론 다른 고양이 냄새라도 나야 정상일텐데 금홍에게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리는 금홍을 안고 들어가는데...

고양이에게서 풀냄새가 난다. 싱그러운 풀냄새.
아니, 왜 고양이에게서 이렇게 진한 풀냄새가 나는거냐 싶어 구석구석 살펴보면 그 왜 강아지풀 풀씨처럼 생긴게 털 가득 엉켜있다.

첨엔 생각에 오늘은 산에 가서 놀았구나. 아이구 이쁜거. 했다. 그런데 그 후로 여지껏 매일 풀씨가 엉켜 있는걸로 봐서 매일 같이 거기로 출근하는거 같다. 친구들이 안 놀아주나?

아무래도 수상하다.
애교도 많고 사람을 잘 따라서 나랑 걸어가다가도 다른 사람 따라 가는 고양인데 왜 혼자 노는 듯한 인상이지? 매일 빗어주고 풀씨를 털어줘도 다음날 밤이면 어김없이 그 풀씨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젠 낙엽색으로 물든 풀씨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미행 해봐야겠다.


Posted by 솔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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