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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2009. 4. 30. 09:00

그가 일할 때면 언제나 비가 내린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라..." 글쎄, 맑게 개인 날을 본적이 없는 그에게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말이다.

그의 직업은 사신이다.
이번에 그에게 배정된 사람은 20대 초반의 전자회사 콜센터의 불만처리부 여직원이다.
일주일간 그녀를 직접 만나보고 조사해서 죽음을 실행하기에 적합한가 어떤가를 판단하여 보고 하면 된다. 판단은 "가(可)" 혹은 "보류", "가(可)"로 결정되면 일주일의 다음날 즉 여드레째 되는날 죽음이 실행된다.

그녀의 생김새는 평범하다 못해 거리에서 보면 풍경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약간 큰 키에 적당히 마른 몸매는 보기 나쁘지 않지만 구부정한 걸음걸이 때문에 어쩐지 음울해 보인다.
표정 또한 곧 죽을 사람처럼 한없이 어둡다.
사실 "가"가 되면 죽겠지만.

지금의 그는 대상자에 접근하기 쉽게끔 20대 초반의 남자로 세팅됐다.
사신은 케이스 별로 그에 맞는 외모와 연령이 된다.
하지만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관리상의 편의 때문일까?)
치바가 그의 이름이다.
그렇다. 도쿄 옆 치바현(縣)의 그 "치바"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에게 접근한다.
매사 음울할 것 같은 그녀는 역시나 삶의 목적도, 남자친구도 없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고 한다.
게다가 고객센터로 전화해 끈질기게 아무말이나 해봐라, 노래 해봐라, 만나보자는 스토커까지 있는 한마디로 자기 인생은 실패자이자 살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영락없이 '가'다.
이번엔 일이 일찍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냥 미리 "가"로 보고하고 나머지 시간을 음반매장에서 보내다 갈까? 

사신은 모두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을 좋아한다.
어떤 사신들은 일찌감치 "가"로 보고하고 나머지 기간동안 음반매장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일종의 직업윤리(랄까...)가 있어 그냥 일주일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시 그녀, 후지키 가즈에를 만나게 된건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결정을 내려 감사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 골목에서 후지키 가즈에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상과 달리 그녀는 다른 길로 간다.
그리고는 한층 더 암울한 얼굴로 전에 말했던 스토커를 만난다!
그런데 스토커의 얼굴이 치바에게 어쩐지 낯이 익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과연, 후지키 가즈에는 여드레째 되는날 생을 마감하게 되는걸까...

*

이 책은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맨스에 하드보일드, 추리, 로드무비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 중 후지키 가즈에가 나오는 첫번째 단편은 마지막 단편과도 이어지고
70대의 노파가 주인공인 마지막 단편은 나머지 단편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죽음에 대한 사신의 성찰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화자인 사신 치바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때문에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죽음을 앞둔 인간과 함께하는 시간과 마지막에 그가 사신임을 알아채는 노파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70대 노파와의 대화다.

   "그보다 지금 당신의 말투를 보니, 역시 이번에는 내가 죽을 차례같군요."
   "마음이 상했나요?"
   "아니오."
   노파는 허세를 부리지도, 자포자기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듯
   "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게 뭐죠?"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
   "당연하죠."
   "당신한테는 당연하겠지만, 나는 이걸 실감하는 데만 칠십 년이나 걸렸다구요."
    ....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

이사카 코타로를 처음 만난건 <골든 슬럼버>를 통해서였고 이번이 두번째 작품이다.
<사신 치바>는 <골든 슬럼버>에 비하면 조금은 어깨에서 힘을 뺀 작품같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터치로 풀어내는 감각이 좋다.
가볍게 읽기에 좋은 그렇다고 진지함을 놓치지 않은 품격있는 오락소설이다.

***

인상 깊었던 구절,
 "외모는?" "시원찮아." 남자는 답을 하더니 제풀에 웃음을 터뜨렸다. 넉넉하고 따뜻한 웃음 소리였다. "괜찮아. 아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니까. 재능이 발휘되기만 한다면 껍질이 벗겨진 듯 외모에서도 매력이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런거야."

****

2008년 <스위트 레인 - 사신의 정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돼 주인공은 금성무가 맡았다고 한다.
국내에선 개봉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 번 봐야겠다.


Posted by 솔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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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myang* 2009.04.30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보니까 정말 영화로도 어울리겠구나 싶고 금성무라니 더더욱~보고싶어지요 힛
    재미있으면서 깊숙한 메세지가 전달될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기대되는 내용이네요
    때론 삶의 무게로 왜곡될지도 모를 진실을 가상속에서 전해읽을수 있다니
    오히려 편견없이 받아들일수도 있겠어 ..라는 느낌도 들구요
    글로만 접햇는데 막 읽은척? ㅋㅋ~
    느낌이 샤악~전달되는데요~근데 왜 영화가 더 보고싶어지죠? ㅋㅋ

  2. 머니야 머니야 2009.04.30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컹...여긴 엄마블로그모임인가봐요...ㅠㅠ
    솔이아빠님으로 부터.. 다른방 활동하신단 말씀 들었어요^^
    앞으로 자주 널러오겠습니당!

    • 솔이엄마 2009.05.07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마들 방이 되버렸네요? ㅎㅎㅎㅎ
      솔이네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려니 성격이 달라, 이곳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3. 명이~♬ 2009.05.11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은 책인데요? 저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ㅎㅎ
    그러고보니 전 아빠블로그, 엄마블로그에 주로 서식한다능..ㅋ

    • 솔이엄마 2009.05.13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꽤 재밌는 책이에요. 애 키우면서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쉬운? 책이고요.ㅎㅎㅎㅎㅎ
      그런데 명이님은 왜 엄마 아빠블로그에 서식하실까나~~ㅋ
      조만간 엄마블로거가 되는건 아닐까하는 무의식의 발로?

  4. Kay~ 2009.05.20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여기가 솔이아빠의 짝궁 블로그인가요?
    솔이엄마님 책 좋아하세요!
    솔이아빠네 블로그 배너에 솔이엄마의 서재? 이렇게 되어 있던데.. ㅎㅎ
    그것도 좋아보이더라는..
    이런 제가 첫 댓글에 이렇게 횡설 수설.. 하네요!. ㅋㅋ
    자주는 못 오고요 가끔 놀러올께요..
    근데 위 사진 안나오넨요!